성장반
“영적 순례 40일: 사순절, 예배의 본질을 다시 묻다”
- 서른 다섯 번째날
1. 찬송가 284장
2. 예배에 대한 글 읽기
만족한 삶의 비 결 은?( 빌립보서 4:10–13)
옛날에 한 위대한 왕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자 점성가가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폐하의 병을 고치려면, 이 나라에서 정말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을 한 명 찾아 그의 속옷을 밤낮으로 입으셔야 합니다.”
왕의 전령들이 나라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몇 달이 지나 다시 돌아왔지만, 아무도 속옷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왕이 묻습니다.
“온 나라를 다 뒤졌는데 만족하게 사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단 말이냐?”
그때 전령 하나가 말합니다.
“폐하, 딱 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속옷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그 사람에게는… 속옷이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 웃기지만 씁쓸합니다.
만족하며 사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시대,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만족은 ‘더 가지면’ 오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벌면 만족할 수 있을 텐데.”
미국의 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소득의 두 배를 벌면 성공했다고 느낄 거라고 대답했습니다.
2,500만 원 벌면 5,000만 원,
1억 벌면 2억.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두 배가 되어도, 또 두 배를 원한다는 겁니다.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에게 누군가 물었습니다.
“얼마나 가져야 행복합니까?”
그의 대답은 단순했습니다.
“Just a little more. 조금만 더 요.”
여러분, 솔직하게 물어봅시다.
나는 내 삶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내 직업에, 내 가정에, 내 몸에, 내 수입에 만족합니까?
결혼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결혼이 힘들고,
혼자면 자유로울 줄 알 았는데 외롭습니다.
거울을 보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주님… 도와주세요”입니까?
그런데 지금 가진 것에 감사는커녕, 우리는 비교하고, 짜증내고, 불평하는 데 너무 익숙해졌습니다.
우리는 왜 만족하지 못하는가
첫째, 비현실적인 기대 때문입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비교적 좋은 조건에서 결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결혼해 보니 배우자가 완벽하지 않습니다.
직장에 가 보니 상사도, 동료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 보니 성도도, 목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결국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커집니다.
둘째, 부당한 비교 때문입니다.
연예인과 나를 비교하고, 성공한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키도 작고, 외모도 뛰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교 대신 사명을 붙들었습니다.
셋째, 축복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족은 줄고, 우울과 자살률은 늘었습니다.
왜입니까?
축복을 당연한 권리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에어컨, 냉장고, 자동차, TV…
없으면 못 살 것 같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다 없이 살았습니다.
우리는 가진 열 가지보다 없는 한 가지에 집착합니다.
넷째, 욕심이 꿈을 삼켜버렸기 때문입니다.
저축은 믿음이지만, 축적은 두려움입니다.
예수님은 눅 12장에서 창고만 키우다 죽은 부자를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은 분명히 말합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렇다면, 만족한 삶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어떠한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노라.”
그때 그는 늙었고, 병들었고, 가난했고,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만족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만족은 타고나는 게 아닙니다. 훈련입니다.
첫째,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도 자신이 가진 것을 보았습니다.
감사는 상황을 바꾸기보다, 사람을 바꿉니다.
시인 제인 케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모든 순간은 당연한 게 아닙니다.
언제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둘째,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모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깨우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지만,
그곳에서 복음은 황제의 집까지 들어갔습니다.
환경이 사명을 막지 못합니다.
셋째, 사람 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관심과 사랑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힘든 인생을 버티게 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오늘 집에 가시기 전에,
여러분 인생에 힘이 되어 준 사람 한 명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연락해 보십시오.
맺음말
이제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을 내려놓고,
이미 받은 것에 감사하십시오.
이사야 55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돈 없이, 값없이 와서 먹으라.”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이미 필요한 것을 다 받았습니다.
만족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입니다.
주님 안에서 만족을 배우는 은혜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깨달은 한 문장 속지에 적기
4. 개인과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 개인, 목장,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
5. 소그룹 단체 방에 완료 올리기
예) 1일차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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